“소비자물가 3.4% 상승”이라는 뉴스를 보고 “아, 인플레 심하네. 주식 팔아야겠다”라고 생각한 적 있나. 10년차인 나도 초보 때는 그랬다. 근데 물가는 숫자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고, 해석이 다르면 주가는 반대로 간다. 지난 8월 CPI가 3.4%로 나왔을 때 나스닥이 오른 이유를 오늘 파보자.
CPI, PCE, 근원… 뭐가 뭔가
미국 물가 지표는 세 종류가 있다. CPI(소비자물가지수), PCE(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그리고 각각의 ‘근원’ 버전이다. 헷갈리니까 쉽게 정리하자.
CPI는 “소비자가 체감하는 물가”다. 노동통계국이 매달 발표한다. 장바구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를 재는 거다. PCE는 “연준이 보는 물가”다. 상무부가 발표하고, 연준이 금리 결정 때 참고한다. 계산 방식이 달라서 CPI보다 낮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근원’은 에너지와 식품을 뺀 버전이다. 왜 빼냐고? 에너지랑 식품은 가격 변동이 너무 심해서다. 중동에서 전쟁 나면 기름값이 뛰고, 가뭄 나면 곡물값이 뛴다. 이런 걸 빼야 ‘진짜’ 물가 흐름이 보인다. 연준이 근원을 더 중시하는 이유다.
지난 8월 숫자를 보자. CPI 전년 대비 3.4%, 전월 대비 0.4%. 근원 CPI는 전년 2.4%, 전월 0.3%. PCE는 헤드라인 3.7%, 근원 3.3%였다. (뉴스웨이, 조선비즈 보도 기준) 숫자가 여러 개니까 하나씩 뜯어보자.
에너지가 주도한 3.4%
8월 CPI 3.4%의 주범은 에너지다. 에너지 지수가 전월 대비 2.1%, 전년 대비 16.3% 급등했다. 휘발유 가격은 전월 대비 3.9%, 전년 대비 27.4%가 뛰었다. 전체 CPI 상승분의 3분의 1 이상이 휘발유에서 나왔다. 배경은 중동 전쟁이다. 이란과의 갈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뛰면서 물가를 밀어 올린 거다.
여기서 중요한 건, 연준은 에너지발 물가를 ‘일시적’으로 본다는 거다. 전쟁은 언젠가 끝나고, 기름값은 다시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연준이 진짜로 보는 건 근원 CPI다. 에너지와 식품을 뺀, 기저의 물가 흐름.
근데 8월 근원 CPI가 전월 대비 0.3%로 나왔다. 예상(0.2%)을 웃돌았다. 이게 문제였다. 네이버의 한 경제 블로거 분석에 따르면, 연준 의장 케빈 워시는 “물가가 목표(2%)를 향해 계속 내려가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근원 물가의 월간 상승률이 0.3%로 튀면서, 그 조건이 흔들린 거다. 실제로 9월 FOMC에서 연준은 0.25%p 인상을 단행했다.
그럼 왜 주가는 올랐나
여기서 역설이 생긴다. 물가가 예상보다 높았는데, 10월 들어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비디아는 장중 신고가를 찍었다. 왜 그럴까.
첫째, ‘예상 대비’ 서프라이즈가 없었기 때문이다. CPI 전년 3.4%는 예상치와 일치했다. 시장은 예상보다 나쁜 숫자를 싫어하지, 예상대로 나온 숫자는 소화한다. “알던 악재”는 악재가 아니다.
둘째, 고용이 식었기 때문이다. 9월 신규 고용이 2만 9천 개로 예상(8만 개)을 크게 밑돌았다. 실업률은 4.2%로 올랐다. 고용이 식으면 연준이 추가 인상을 주저한다. “물가는 높지만 고용이 식었으니 10월은 동결”이라는 기대가 생긴 거다. 실제로 시장은 10월 FOMC 동결에 무게를 두고 있다.
셋째, AI 실적 기대가 물가를 이겼기 때문이다. 금리가 5%를 넘어도 엔비디아 실적이 신고가를 내면 주가는 오른다. 1번 글에서도 말했지만, 실적이 주인공이고 물가는 배경음악이다. 배경음악이 시끄러워도 주인공이 잘하면 관객은 박수를 친다.
AI 투자자가 체크해야 할 물가 지표 3가지
그래서 AI 투자자는 뭘 봐야 하나. 세 가지만 기억해라.
첫째, 근원 CPI의 ‘전월 대비’ 상승률이다. 전년 대비는 작년과 비교라서 둔하다. 전월 대비가 ‘지금’ 물가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0.2%면 안심, 0.3%면 경계, 0.4%면 비상으로 봐라. 연준도 이걸 본다.
둘째, 근원 PCE다. 연준의 공식 타깃(2%) 기준이 되는 지표다. CPI보다 후행하지만, 연준의 마음을 읽으려면 PCE를 봐야 한다. 8월 근원 PCE 3.3%는 아직 목표와 거리가 멀다. 이게 2%대로 내려와야 금리 인하 얘기가 나온다.
셋째, 에너지 가격(유가)이다. WTI가 85달러를 넘으면 인플레 재점화 우려가 커지고, 90달러를 넘으면 기술주가 가장 먼저 맞는다. 유가는 CPI의 선행지표나 마찬가지다. 주유소 가격표가 당신의 포트폴리오를 흔드는 시대다.
실습: 지표 발표 캘린더 활용법
물가 지표는 발표 ‘전후’로 주가가 흔들린다. 활용법을 정리해본다.
CPI는 매달 중순에 발표된다. 발표 전날에는 포지션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서프라이즈가 나오면 주가가 2~3%는 가볍게 흔들린다. 10년차인 나는 CPI 발표일에는 신규 매수를 안 한다. 발표 보고 사는 게 늦지 않다.
PCE는 월말에 나온다. CPI보다 시장 영향은 작지만, 연준의 속마음을 읽는 데는 더 중요하다. PCE가 둔화되면 “연준이 안심하고 있다”는 신호다.
고용보고서는 매달 첫째 주 금요일이다. 이번 9월 고용 쇼크(+29k)처럼, 고용이 식으면 기술주에는 호재가 된다. “나쁜 뉴스가 좋은 뉴스”인 역설적인 지표다. 고용이 너무 뜨거우면 연준이 긴축하고, 고용이 식으면 연준이 쉰다. AI 투자자에게 고용 둔화는 반가운 소식이다.
정리하자. 물가는 숫자 하나가 아니라 해석의 게임이다. CPI 3.4%라는 숫자보다 “근원이 튀었나”, “예상과 달랐나”, “연준이 어떻게 볼까”가 중요하다. 숫자를 보는 게 아니라 숫자를 ‘읽는’ 연습을 해라. 10년차가 초보와 다른 건, 숫자를 더 많이 아는 게 아니라 숫자를 더 잘 읽는 거다.
다음 글에서는 연준의 다음 수를 다뤄보자. 9월 인상 이후 10월 동결 전망, 그리고 베센트 재무장관과 연준의 신경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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